
- 바나나 스쿨 -
바나나 스쿨 3군데를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간 곳은 양곤강가에 있는 빈민촌이다. 빈민촌 입구까지 가는 길은 어느 정도 단장된 길이었는데, 빈민촌에 들어서면서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집들과 그 사이에 있는 좁은 길 주위는 버려진 쓰레기들로 덮혀 있었다. 여러 가구들이 돼지를 키우고 있었고, 돼지를 넣은 우리와 사람이 사는 공간이 너무 가까왔다.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이 힘들겠다고 하는 말에 김 선교사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래도 강가촌에 사는 분들입니다. 서울 강남까지는 못해도, 여기 사는 분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라고 했다. 그 빈민촌 중앙에 바나나 스쿨이 있었다. 보통크기 대나무 집 한 칸안에 약 20여명 가량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소리내어 말을 배우고 있었다. 왠 외국인들이 왔나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눈들을 보니, 미국에서 자라는 비슷한 나이 또래 아이들과 다른 것이 별로 없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좋은 환경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지혜롭게 자라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임을 느낄수 있었다.
두번째 장소의 바나나 스쿨은 김선교사님도 오랫동안 직접 방문하기를 꺼려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선교사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헌금하신 것으로 땅을 사고 대나무집을 지어 학교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는 곳이라고 했다. 그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두분은 부부였다. 특히 부인이 최근에 아기 쌍동이들을 낳았다고 했다. 학교는 첫번째 학교보다 컸다. 아이들도 약 50명 가량 되는 것 같았는데, 반은 아침 낮잠 시간이라고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자야하는 시간이었다. 옆방에서는 소리내어 글을 배우는 친구들의 소리와 갑자기 찾아온 외국인들로 인해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회초리를 들고 아이들을 재우려는 선생님 때문에 서로 말도 안하고 머리를 책상에 댄 아이들이 대견하다. 그 옆방에서 약 20여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 선생님 옆에는 천장에 매달은 소쿠리가 있었는데, 바로 쌍동이 아기들이 그 안에 있었다. 더운 날에도 열정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 못지 않게 배우는 어린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 역시 너무 감동스러웠다. 이런 바나나 스쿨들을 8군데에서 운영하며 300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힘쓰시는 김선교사님에게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 분의 사역을 우리 교회가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마음에 우러나옴을 느낄수 있었다.
